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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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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촬영연도 : 2017
  • 촬영기관 : 국립국악원
  • 소장기관 : 국립국악원
어문

국립국악원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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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현악기이다. 거문고는 궁중 음악과 선비들의 풍류방 음악의 악기로, 전문 연주가의 독주 악기로 전승되었다. 오른손에는 대나무로 만든 술대를 쥐고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고, 왼손은 공명통 위에 고정된 괘를 집어 음정을 얻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의 재상 왕산악이 거문고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또한 무용총을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에 거문고와 유사한 모습이 확인된다. 거문고는 고구려의 대표적인 악기였다. 고구려에서 발생한 거문고는 통일신라에 전해져 신기(神器)로 보전되다가 옥보고(玉寶高), 속명득(續命得), 귀금(貴金), 이찬(伊飡), 윤흥(允興), 안장(安長), 청장(淸長), 극상(克相), 극종(克宗) 등에게 전수되어 민간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거문고는 신라의 삼현삼죽(三絃三竹)의 하나로 향악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조선시대 거문고는 궁중에서보다 민간에서 더욱 발전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거문고는 일부 양반들과 중인계층에 수용되어 선비들의 필수품의 하나로 여겨졌다. 이들은 거문고를 연주함으로써 정신을 수양하고 다스리고자 했다. 선비들에 의해 많은 거문고 악보가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전하는 고악보의 대부분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20세기 초반 거문고는 거문고 음악의 역사상 아주 색다른 변화를 겪는다. 백낙준(1884~1933)에 의해 풍류 악기가 산조 연주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거문고풍류에 익숙한 청중들은 백낙준의 거문고 산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산조를 통해 거문고의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게 되었다. 백낙준 이후 백석기, 신쾌동, 한갑득, 김윤덕, 원광호 등 자유롭고 개성 있는 산조 유파가 형성되었다.
거문고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하여 관광기념품이나 전시와 관련된 복제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시작된 오랜 전통의 악기로 자체의 모습을 통해서도 우리나라 악기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느낄 수 있음이다. 기념품이나 복제품을 통해서 국악기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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