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시놉시스/설명

01:56 오늘은 현충일, 이 빗속에서 정성스레 묘비를 닦고 계신 이 노신사는 누구실까요
02:05 그리고 이곳에 잠들어 있는 분은 누구실까요
02:09 이곳엔 저의 오빠께서 잠들어있고 이 노신사는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02:16 내 오빠의 소대원으로 이국의 전쟁터에서 잠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분이라지요
02:25 소대장과 소대원으로 만나 함께 했던 시간은 단 4개월
02:31 단 4개월이라는 그 짧은 시간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02:35 이분이 소대장에게 느꼈던 깊은 신뢰와 존경의 마음
02:41 둘이 똑같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대장에게서 받았던 그 큰 배려와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02:50 55년이라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잊을 수가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일이라고 늘 말씀하십니다
02:59 그렇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돌아와 전역한 이래 한 번도 거르지 않고
03:05 56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현충일이면 먼저 떠나신 옛 소대장님을 참배하러 오신답니다
03:14 남아있는 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고
03:19 또한 이것이 인간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기 때문이랍니다
03:24 그래서 당신 스스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날이 될 때까지는
03:29 참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03:34 오늘도 언제나처럼 한 시간 일찍 도착하셔서 준비해 오신 특수 가위를 가지고
03:42 묘비 위로 함부로 자라 뒤엉킨 잔디 뿌리를 잘라내어 깨끗이 정리하고 정성을 다해 닦고 계십니다
03:52 이 노병의 옛 소대장 나의 오빠는 육군사관생도가 되어 내가 초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집을 떠났다
04:02 너무 일찍 내 곁을 떠나기는 했지만 오빠는 여름과 겨울 1년에 두 차례 휴가를 나올 때마다
04:10 국가에서 받은 소액의 생활비를 아껴 당시 귀하던 동화책을 내게 사다 주고
04:17 공부도 봐주고 함께 재밌게 놀아주고
04:20 또 나를 데리고 멀고 가까운 친척 집들을 일일이 다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리곤 했었다
04:28 그렇게 오빠는 아주 어려서부터 한 집안의 장손으로서 집안에 대한 유난히 강한 책임감을 갖고있었고
04:36 사관학교 4년의 과정을 통해 국가에 대한 애국심마저 더욱 투철한 진정한 군인이 되어갔다
04:45 그리고 오빠가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되어 서부전선에 배치되어 나라를 지키게 되고
04:53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04:56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 여러 가지로 힘들고 적응이 안 되어
05:00 늘 오빠한테 편지로 불평을 하곤 했더니 어느 겨울 휴가 때 안네의 일기 책을 사 가지고 왔다
05:08 겉표지 안쪽 흰 여백에 그렇게 투덜거리는 게 아니야 이렇게 엄청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단다 라고 쓰여있었다
05:23 그런데 그 때 베트남전에서 고전을 하고 있던 미국이 우리나라에 도움을 요청해왔다
05:31 우리는 한미동맹국의 입장으로 미국을 도와야 했고
05:35 한편으로는 어려운 국가의 경제적 돌파구의 방편으로 파병을 결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