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사진)_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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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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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촬영연도 : 2024
- · 촬영기관 :
- · 소장기관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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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물 정보
- 저작물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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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이후 발원문을 포함한 복장유물이 추가로 연구됨에 따라 제작시기와 발원자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발원문에는 1346년(고려 충목왕 2)이라는 정확한 제작시기가 있어, 고려 후기 불상 연구의 절대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고려 후기 불상조각 중 정확한 약기인(藥器印)을 취하고 있는 약사여래의 도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머리와 이목구비, 신체와 불신의 표현 등에서 14세기 불상의 전형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 시기 불상 중에서도 뛰어난 예술적 조형성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주조기술법에 있어서도 내외부의 주조결함이 거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 주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고려 후기에 제작된 불상은 대부분 아미타 정토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 불상 역시 이러한 신앙적 배경과 더불어 고려 후기 유일의 금동약사여래상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따라서 이 불상을 통해 당시 아미타정토 신앙뿐만 아니라 약사 신앙의 흔적을 분명하게 알려 준다는 점에서 신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장곡사 불상의 지정가치를 검토하는데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으로 불상이 보여주는 조형적·도상적 중요성 뿐 아니라 복장발원문에 기재된 풍부한 인명정보를 들 수 있다. 장곡사 불상 복장에는 약1,116명에 달하는 발원자의 정보를 담고 있다. 1천명이 넘는 발원자의 등장은 고려 후기 발원문 중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이들 시주자 인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문헌 자료가 절대 부족한 고려사 복원에 중요한 사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성불원문을 지은 백운(白雲)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불설직지심체요절』을 편찬한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과 동일인물로 추정되고, 그는 고려 후기 나옹혜근(懶翁慧懃, 1320∼1376),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와 함께 고려 말 ‘삼사(三師)’로 추앙받았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하는 기록이 부족하여 그의 행적과 불교사적 연구는 미진하였다. 그러나 이 성불원문이 확인됨에 따라 공민왕 이전의 그의 구체적인 신앙 활동을 엿볼 수 있어 그의 생애 연구에도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장곡사 불상의 제작을 주도한 계층은 고려 왕족을 비롯해 하급무관과 군부인들로 보이며, 이들은 몽고침탈기 동안 대표적인 불사(佛事) 주도층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본인이나 가족 중에 전쟁에 직접 참전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불사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무병장수와 전쟁 중에 죽은 친족의 극락왕생을 발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 중에는 공민왕의 몽고식 이름인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를 비롯해 금타이지(金朶兒只), 도르지(都兒赤)처럼 몽고식 이름이 눈에 띠는데, 당시 고려 사회에 스며든 몽고 풍속의 실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는 역사의 기록 속에서 찾을 수 없는 14세기 중엽 경의 시대상을 꾸밈없이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ㆍ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정황 등을 종합해 볼 때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미술사 뿐 아니라 불교사, 사회사적 측면에서도 고려 14세기 중반의 역사상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발원문 및 조성에 참여한 시주자가 기록된 묵서가 있는 직물편, 그리고 공예적 수준이 뛰어난 향낭(香囊)과 함께 국보로 가치가 충분하다.
저작물 설명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이후 발원문을 포함한 복장유물이 추가로 연구됨에 따라 제작시기와 발원자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발원문에는 1346년(고려 충목왕 2)이라는 정확한 제작시기가 있어, 고려 후기 불상 연구의 절대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고려 후기 불상조각 중 정확한 약기인(藥器印)을 취하고 있는 약사여래의 도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머리와 이목구비, 신체와 불신의 표현 등에서 14세기 불상의 전형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 시기 불상 중에서도 뛰어난 예술적 조형성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주조기술법에 있어서도 내외부의 주조결함이 거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 주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고려 후기에 제작된 불상은 대부분 아미타 정토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 불상 역시 이러한 신앙적 배경과 더불어 고려 후기 유일의 금동약사여래상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따라서 이 불상을 통해 당시 아미타정토 신앙뿐만 아니라 약사 신앙의 흔적을 분명하게 알려 준다는 점에서 신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장곡사 불상의 지정가치를 검토하는데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으로 불상이 보여주는 조형적·도상적 중요성 뿐 아니라 복장발원문에 기재된 풍부한 인명정보를 들 수 있다. 장곡사 불상 복장에는 약1,116명에 달하는 발원자의 정보를 담고 있다. 1천명이 넘는 발원자의 등장은 고려 후기 발원문 중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이들 시주자 인명에 대한 분석을 통해 문헌 자료가 절대 부족한 고려사 복원에 중요한 사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성불원문을 지은 백운(白雲)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불설직지심체요절』을 편찬한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과 동일인물로 추정되고, 그는 고려 후기 나옹혜근(懶翁慧懃, 1320∼1376),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와 함께 고려 말 ‘삼사(三師)’로 추앙받았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하는 기록이 부족하여 그의 행적과 불교사적 연구는 미진하였다. 그러나 이 성불원문이 확인됨에 따라 공민왕 이전의 그의 구체적인 신앙 활동을 엿볼 수 있어 그의 생애 연구에도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장곡사 불상의 제작을 주도한 계층은 고려 왕족을 비롯해 하급무관과 군부인들로 보이며, 이들은 몽고침탈기 동안 대표적인 불사(佛事) 주도층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본인이나 가족 중에 전쟁에 직접 참전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불사를 통해 자신과 가족의 무병장수와 전쟁 중에 죽은 친족의 극락왕생을 발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명 중에는 공민왕의 몽고식 이름인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를 비롯해 금타이지(金朶兒只), 도르지(都兒赤)처럼 몽고식 이름이 눈에 띠는데, 당시 고려 사회에 스며든 몽고 풍속의 실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는 역사의 기록 속에서 찾을 수 없는 14세기 중엽 경의 시대상을 꾸밈없이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ㆍ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정황 등을 종합해 볼 때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은 미술사 뿐 아니라 불교사, 사회사적 측면에서도 고려 14세기 중반의 역사상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발원문 및 조성에 참여한 시주자가 기록된 묵서가 있는 직물편, 그리고 공예적 수준이 뛰어난 향낭(香囊)과 함께 국보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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