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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조건 이란

    1) 제1유형 : 출처표시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2) 제2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3) 제3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4)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5) 만료공공저작물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이 없이 자유롭게 이용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 없음

    조선고적조사보고 : 만달산고구려고분군구조 (도면)

    이미지

    조선고적조사보고 : 만달산고구려고분군구조 (도면)_1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만달산고구려고분군구조 (도면)_2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만달산고구려고분군구조 (도면)_3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만달산고구려고분군구조 (도면)_4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만달산고구려고분군구조 (도면)_5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만달산고구려고분군구조 (도면)_6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만달산고구려고분군구조 (도면)_7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만달산고구려고분군구조 (도면)_8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만달산고구려고분군구조 (도면)_9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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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조선고적조사보고 #일제강점기 #연구자료
    제공기관
    • · 촬영연도 : 1937
    • · 촬영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 소장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공공누리 유형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저작물 정보
    저작물 설명

    각 고분의 주체를 이루는 곽실은 모두 석축(石築)으로 이것은 분롱(墳壟)의 거의 중심 밑에 지산(地山)을 조금 파 내려 연도의 입구를 남면(南面) 또는 남남서쪽, 남남동쪽을 향해 만들어진 것이다. 단 하나의 고분에 반드시 1개의 곽이 있다고만 할 수는 없고 가끔 2개의 곽실을 가진 것이 있다. 이번에 조사한 것 중에서 제5, 제7, 제8호분은 그 예로서 모두 동서쪽에 2개의 곽이 서로 나란히 있다. 이들 곽실은 모두 이미 천장부를 잃었다. 원래부터 인위적인 파괴에 의한 것으로 그 대부분은 내부가 어지럽혀져 있고 이 상태로 보건대 이는 도굴의 결과라고 판단할 수 있다. 본 조사에 있어서 가장 유감인 것은 실의 천장부 구조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인데 먼저 조사된 제2호분이 이 고분군 중 천장부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예로서 보존되고 있으므로 참조·유추할 수 있다. 현실은 주로 석탄암 할석(割石)을 불규칙하게 쌓아올린 벽면에 의해 방형 또는 장방형, 제형(梯形)의 구획을 이루는 것이다. 네 벽의 구성은 대체적으로 하부에 비교적 소형인 할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위로 올라감에 따라 대형의 석재를 겹쳐 쌓았다. 그리고 그 상변(上邊)에 선반받침을 만들고 천장재를 놓은 것과 같다. 단 이번 발굴한 각 석곽에서는 거의 이 선반받침 석재가 남아 있지 않았다. 제4, 제10호분 두 군데에서 그 일부를 봤을 뿐이다. 각 곽실의 벽면은 원래 모두 회반죽을 바른 것 같은데 그 대부분은 박락하여 확실히 인지되는 것은 제4, 제9, 제10호의 3분(墳)뿐이다. 그 제4호분의 석실에서는 연도의 양 벽에 걸쳐 비교적 잘 유존(遺存)되어 있다. 단 제5호분의 동쪽 석곽만은 본래 벽면에 회반죽을 바르지 않은 것 같이 여기에는 아무런 흔적도 볼 수 없다. 바닥은 지산(地山)을 두들겨 다진 것과 회반죽을 깐 것 두 가지로 만들어져 있다. 제5호분의 동쪽 석곽의 바닥은 기저(基底)에서 약 1척 3, 4촌 두께에 점토질인 적색토를 두들겨 다져 바닥으로 한 것이다. 또한 제17호분은 할석(割石)을 평평하게 구분하여 바둑판무늬(石?)로 한 것이고 이들은 모두 좀 특수한 조작이라고 할 수 있다. 관대는 모두 바닥에서 한 단 높여 할석을 평평하게 하여 나열하거나 평판석(平板石)을 가끔 3, 4중으로 겹쳐 쌓아올려 만들고 위를 회반죽으로 칠한 것이 보통이다. 위치는 어느 석벽도 늘 현실의 서쪽, 즉 서쪽 벽 및 남북쪽 벽에 접하여 만들어져 있고 동쪽 벽과의 사이는 빈 곳으로 바닥 그대로이다. 단 제13호분은 서쪽 벽에 접하지만 남북쪽 벽 전체에 이르지 않고 각각 그 사이에 빈 곳을 만들고 있다. 또 제4호분은 관대가 1쌍 있고 동서쪽 벽에 접하여 만들어지고 중앙을 빈곳으로 하여 양자를 구획하였다. 연도는 어느 곽실에서도 현실 남쪽 벽의 동반(東半)에 치우쳐 입구가 있고 약간 남쪽을 향해 입(口)을 열고 있는데 제8호분 동쪽의 석곽만은 드물게도 입구가 현실 남쪽 벽의 서반(西半)에 편재한다.

    저작물 설명
    각 고분의 주체를 이루는 곽실은 모두 석축(石築)으로 이것은 분롱(墳壟)의 거의 중심 밑에 지산(地山)을 조금 파 내려 연도의 입구를 남면(南面) 또는 남남서쪽, 남남동쪽을 향해 만들어진 것이다. 단 하나의 고분에 반드시 1개의 곽이 있다고만 할 수는 없고 가끔 2개의 곽실을 가진 것이 있다. 이번에 조사한 것 중에서 제5, 제7, 제8호분은 그 예로서 모두 동서쪽에 2개의 곽이 서로 나란히 있다. 이들 곽실은 모두 이미 천장부를 잃었다. 원래부터 인위적인 파괴에 의한 것으로 그 대부분은 내부가 어지럽혀져 있고 이 상태로 보건대 이는 도굴의 결과라고 판단할 수 있다. 본 조사에 있어서 가장 유감인 것은 실의 천장부 구조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인데 먼저 조사된 제2호분이 이 고분군 중 천장부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예로서 보존되고 있으므로 참조·유추할 수 있다. 현실은 주로 석탄암 할석(割石)을 불규칙하게 쌓아올린 벽면에 의해 방형 또는 장방형, 제형(梯形)의 구획을 이루는 것이다. 네 벽의 구성은 대체적으로 하부에 비교적 소형인 할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위로 올라감에 따라 대형의 석재를 겹쳐 쌓았다. 그리고 그 상변(上邊)에 선반받침을 만들고 천장재를 놓은 것과 같다. 단 이번 발굴한 각 석곽에서는 거의 이 선반받침 석재가 남아 있지 않았다. 제4, 제10호분 두 군데에서 그 일부를 봤을 뿐이다. 각 곽실의 벽면은 원래 모두 회반죽을 바른 것 같은데 그 대부분은 박락하여 확실히 인지되는 것은 제4, 제9, 제10호의 3분(墳)뿐이다. 그 제4호분의 석실에서는 연도의 양 벽에 걸쳐 비교적 잘 유존(遺存)되어 있다. 단 제5호분의 동쪽 석곽만은 본래 벽면에 회반죽을 바르지 않은 것 같이 여기에는 아무런 흔적도 볼 수 없다. 바닥은 지산(地山)을 두들겨 다진 것과 회반죽을 깐 것 두 가지로 만들어져 있다. 제5호분의 동쪽 석곽의 바닥은 기저(基底)에서 약 1척 3, 4촌 두께에 점토질인 적색토를 두들겨 다져 바닥으로 한 것이다. 또한 제17호분은 할석(割石)을 평평하게 구분하여 바둑판무늬(石?)로 한 것이고 이들은 모두 좀 특수한 조작이라고 할 수 있다. 관대는 모두 바닥에서 한 단 높여 할석을 평평하게 하여 나열하거나 평판석(平板石)을 가끔 3, 4중으로 겹쳐 쌓아올려 만들고 위를 회반죽으로 칠한 것이 보통이다. 위치는 어느 석벽도 늘 현실의 서쪽, 즉 서쪽 벽 및 남북쪽 벽에 접하여 만들어져 있고 동쪽 벽과의 사이는 빈 곳으로 바닥 그대로이다. 단 제13호분은 서쪽 벽에 접하지만 남북쪽 벽 전체에 이르지 않고 각각 그 사이에 빈 곳을 만들고 있다. 또 제4호분은 관대가 1쌍 있고 동서쪽 벽에 접하여 만들어지고 중앙을 빈곳으로 하여 양자를 구획하였다. 연도는 어느 곽실에서도 현실 남쪽 벽의 동반(東半)에 치우쳐 입구가 있고 약간 남쪽을 향해 입(口)을 열고 있는데 제8호분 동쪽의 석곽만은 드물게도 입구가 현실 남쪽 벽의 서반(西半)에 편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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