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고적조사보고 : 고산리제5호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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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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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촬영연도 : 1937
- · 촬영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 소장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공공누리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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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물 정보
- 저작물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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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호분은 제3호분에서 북쪽으로 약 1정(町)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제4호분과 함께 밭 안에 있고 중간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분구(墳丘)는 동서쪽 30척, 남북쪽 27, 28척으로 대략 방대형을 이루고 있으며 높이는 약 6척이다. 봉토의 표면 전체에 걸쳐 크고 작은 무수한 석재가 산출하고 있다. 어떤 것은 인공적으로 나열하여 마치 봉토의 호석(護石)과 같고 또 어떤 것은 돌단의 흔적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나타낸다. 발굴 조사 결과, 이들 석재는 또한 어떤 특수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내부에 포장된 석곽이 파괴에 의해 용재(用材)가 봉토의 표면에 폭로·산란한 것이 분명하다. 전자와 함께 당대의 분묘에 흙과 돌이 반반인 봉토를 가지는 별도 양식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스러운 생각을 해소할 수 있었다. 제5호분의 석실은 크고 작은 야석(野石)을 겹쳐 쌓아 올려 네 벽을 쌓은 것으로 매우 간단하고 조조(粗?)한 것이다. 평면형이 나타내는 크기는 북쪽 벽 4척 8촌, 남쪽 벽 5척 4촌, 서쪽 벽 7척 6촌이고 일그러진 장방형을 이룬다. 현존하는 벽의 가장 높은 곳은 바닥에서 4척 5촌이고 그 이상은 파괴되어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다. 남쪽 벽의 동반(東半)에는 폭 2척 6촌, 높이 3척 정도의 입구가 만들어져 있고 위에 큰 미석(楣石)을 얹었다. 오른쪽 입구에서 이어지는 연도는 길이 3척 4, 5촌이고 그 동쪽 벽은 현실의 동쪽 벽과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실의 바닥 구조는 먼저 8, 9촌 큰 돌을 빈틈없이 깔고 그 위에 작은 돌의 박층(薄層)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네 벽 및 바닥 모두에 원래 회반죽을 발라서 드러나지 않게 가린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지금은 명확한 형적이 없다. 아마 오랜 기간에 걸쳐 폭로·황폐하여 자연히 소실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짧은 연도는 크고 작은 돌을 겹쳐 쌓아 입구를 막았다. 돌문이 있던 장소는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 존부(存否)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막은 돌 위에서 돌문에 장치한 원 직경 3촌의 쇠문고리(鐵?)를 발견한 것으로 생각해보면 원래 돌문이 있었고 조사 때 발견한 연도부를 닫아 막은 것은 황폐한 뒤에 마을사람 등의 손에 의해 행해진 것이다. 바닥 위에서는 녹이 심한 대두(大頭) 쇠못이 십 수 개 산출(散出)되어 원래 목관의 존재를 추측하게 하는데 그 이외에는 어떤 유물도 얻지 못하였다. 석실의 현재 상태로 보아 당초에 천장의 안치수(內法) 높이를 임시로 6척이라고 추정하면 지금 그대로의 토만두(土饅頭)로는 도저히 석곽을 포장(包藏)할 수 없다. 따라서 옛적의 분구는 적어도 그 높이 1장(丈)을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고 나아가서 직경도 37, 38척에 이르는 큰 고분이었다고 추측된다. 그렇다면 오늘 본 고분 부근에서 대성산(大聖山) 기슭에 걸친 일대의 땅에서 다수 목격되는 이 종류의 중소(中小) 고분도 버려두어 헐고 거칠어진 분묘(荒墳)와 같지만 이것도 축조 당시에는 상당히 큰 외형을 가진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저작물 설명제5호분은 제3호분에서 북쪽으로 약 1정(町)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제4호분과 함께 밭 안에 있고 중간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분구(墳丘)는 동서쪽 30척, 남북쪽 27, 28척으로 대략 방대형을 이루고 있으며 높이는 약 6척이다. 봉토의 표면 전체에 걸쳐 크고 작은 무수한 석재가 산출하고 있다. 어떤 것은 인공적으로 나열하여 마치 봉토의 호석(護石)과 같고 또 어떤 것은 돌단의 흔적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나타낸다. 발굴 조사 결과, 이들 석재는 또한 어떤 특수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내부에 포장된 석곽이 파괴에 의해 용재(用材)가 봉토의 표면에 폭로·산란한 것이 분명하다. 전자와 함께 당대의 분묘에 흙과 돌이 반반인 봉토를 가지는 별도 양식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스러운 생각을 해소할 수 있었다. 제5호분의 석실은 크고 작은 야석(野石)을 겹쳐 쌓아 올려 네 벽을 쌓은 것으로 매우 간단하고 조조(粗?)한 것이다. 평면형이 나타내는 크기는 북쪽 벽 4척 8촌, 남쪽 벽 5척 4촌, 서쪽 벽 7척 6촌이고 일그러진 장방형을 이룬다. 현존하는 벽의 가장 높은 곳은 바닥에서 4척 5촌이고 그 이상은 파괴되어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다. 남쪽 벽의 동반(東半)에는 폭 2척 6촌, 높이 3척 정도의 입구가 만들어져 있고 위에 큰 미석(楣石)을 얹었다. 오른쪽 입구에서 이어지는 연도는 길이 3척 4, 5촌이고 그 동쪽 벽은 현실의 동쪽 벽과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실의 바닥 구조는 먼저 8, 9촌 큰 돌을 빈틈없이 깔고 그 위에 작은 돌의 박층(薄層)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네 벽 및 바닥 모두에 원래 회반죽을 발라서 드러나지 않게 가린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지금은 명확한 형적이 없다. 아마 오랜 기간에 걸쳐 폭로·황폐하여 자연히 소실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짧은 연도는 크고 작은 돌을 겹쳐 쌓아 입구를 막았다. 돌문이 있던 장소는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 존부(存否)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막은 돌 위에서 돌문에 장치한 원 직경 3촌의 쇠문고리(鐵?)를 발견한 것으로 생각해보면 원래 돌문이 있었고 조사 때 발견한 연도부를 닫아 막은 것은 황폐한 뒤에 마을사람 등의 손에 의해 행해진 것이다. 바닥 위에서는 녹이 심한 대두(大頭) 쇠못이 십 수 개 산출(散出)되어 원래 목관의 존재를 추측하게 하는데 그 이외에는 어떤 유물도 얻지 못하였다. 석실의 현재 상태로 보아 당초에 천장의 안치수(內法) 높이를 임시로 6척이라고 추정하면 지금 그대로의 토만두(土饅頭)로는 도저히 석곽을 포장(包藏)할 수 없다. 따라서 옛적의 분구는 적어도 그 높이 1장(丈)을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고 나아가서 직경도 37, 38척에 이르는 큰 고분이었다고 추측된다. 그렇다면 오늘 본 고분 부근에서 대성산(大聖山) 기슭에 걸친 일대의 땅에서 다수 목격되는 이 종류의 중소(中小) 고분도 버려두어 헐고 거칠어진 분묘(荒墳)와 같지만 이것도 축조 당시에는 상당히 큰 외형을 가진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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