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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1유형 : 출처표시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2) 제2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3) 제3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4)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5) 만료공공저작물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이 없이 자유롭게 이용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 없음

    조선고적조사보고 : 용강군용월면갈현리소루 (이미지)

    이미지

    조선고적조사보고 : 용강군용월면갈현리소루 (이미지)_1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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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태그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조선고적조사보고 #일제강점기 #연구자료
    제공기관
    • · 촬영연도 : 1926
    • · 촬영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 소장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공공누리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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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물 정보
    저작물 설명

    1916(大正5)년 11월 우리는 갈성리(葛城里) 갑분(甲墳)을 발굴하던 중 우연히 토착민(土民)으로부터 용강군(龍岡郡) 용월면(龍月面) 갈현리(葛峴里) 방우춘(方遇春)의 택지 내에서 전돌(塼)을 발굴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23일에 가서 현장을 조사하였다. 방우춘의 집은 서남쪽에 위치해 있고 그 택지는 주위 경작지보다 한단 높이 쌓아 올려 있으며 정면에 장방형(長方形)의 평면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 있었다. 그 안을 지나서 문이 되고 문으로 들어가면 안뜰(中庭)을 지나 평면 장방형인 주옥(主屋)이 있다. 이 안뜰 맞은편 오른쪽 뒤에 평면 방형(方形)의 정자(亭)가 서 있다. 이 정자의 하층은 네 벽 모두 고전(古塼)으로 쌓았고 그 위에 허술한 누각을 세우고 있다. 또 주옥의 뒤쪽 오른쪽 가장자리 가까이에 전돌로 쌓은 굴뚝이 서 있다. 방우춘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몇 년 전 주옥의 동남쪽(오른쪽) 약 15척의 지점에서 커다란 전돌 약 100장을 발굴한 적이 있었고 또 문의 남쪽(전방 오른쪽) 약 50척 지점에서 고전(古塼)을 800장 정도 발굴하여 이것을 이용하여 정자의 하층벽과 굴뚝을 쌓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주옥의 오른쪽에서 출토된 전돌은 조선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는 위대한 것으로 길이 1척 2촌 5분, 넓이 6촌, 두께 2촌 9분이었다. 이와 같은 종류의 대전(大塼)은 그 이전에 만주에서 하마다(濱田) 박사, 도리이(鳥居) 박사가 발굴한 적이 있었던 것뿐이다. 그 긴 쪽 면은 3조(條)의 경계선(界線)에 의해서 네 구역으로 나누고 절단면은 3조의 경계선에 의해서 두 구역으로 나누어 각 구역에 각각 일종(一種)의 능(菱) 문양이 넣어져 있다. 또 그 평면에는 석목(席目)과 같이 압형문(押形文)을 나타내고 있다. 수법은 간결하고 웅대하여 아마 전한(前漢) 시대에 속하는 것일 것이다.

    저작물 설명
    1916(大正5)년 11월 우리는 갈성리(葛城里) 갑분(甲墳)을 발굴하던 중 우연히 토착민(土民)으로부터 용강군(龍岡郡) 용월면(龍月面) 갈현리(葛峴里) 방우춘(方遇春)의 택지 내에서 전돌(塼)을 발굴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23일에 가서 현장을 조사하였다. 방우춘의 집은 서남쪽에 위치해 있고 그 택지는 주위 경작지보다 한단 높이 쌓아 올려 있으며 정면에 장방형(長方形)의 평면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 있었다. 그 안을 지나서 문이 되고 문으로 들어가면 안뜰(中庭)을 지나 평면 장방형인 주옥(主屋)이 있다. 이 안뜰 맞은편 오른쪽 뒤에 평면 방형(方形)의 정자(亭)가 서 있다. 이 정자의 하층은 네 벽 모두 고전(古塼)으로 쌓았고 그 위에 허술한 누각을 세우고 있다. 또 주옥의 뒤쪽 오른쪽 가장자리 가까이에 전돌로 쌓은 굴뚝이 서 있다. 방우춘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몇 년 전 주옥의 동남쪽(오른쪽) 약 15척의 지점에서 커다란 전돌 약 100장을 발굴한 적이 있었고 또 문의 남쪽(전방 오른쪽) 약 50척 지점에서 고전(古塼)을 800장 정도 발굴하여 이것을 이용하여 정자의 하층벽과 굴뚝을 쌓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주옥의 오른쪽에서 출토된 전돌은 조선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는 위대한 것으로 길이 1척 2촌 5분, 넓이 6촌, 두께 2촌 9분이었다. 이와 같은 종류의 대전(大塼)은 그 이전에 만주에서 하마다(濱田) 박사, 도리이(鳥居) 박사가 발굴한 적이 있었던 것뿐이다. 그 긴 쪽 면은 3조(條)의 경계선(界線)에 의해서 네 구역으로 나누고 절단면은 3조의 경계선에 의해서 두 구역으로 나누어 각 구역에 각각 일종(一種)의 능(菱) 문양이 넣어져 있다. 또 그 평면에는 석목(席目)과 같이 압형문(押形文)을 나타내고 있다. 수법은 간결하고 웅대하여 아마 전한(前漢) 시대에 속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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