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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1유형 : 출처표시
    - 출처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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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2) 제2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3) 제3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4)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5) 만료공공저작물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이 없이 자유롭게 이용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 없음

    조선고적조사보고 : 용강군해운면갈성리갑총 (이미지)

    이미지

    조선고적조사보고 : 용강군해운면갈성리갑총 (이미지)_1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용강군해운면갈성리갑총 (이미지)_2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용강군해운면갈성리갑총 (이미지)_3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용강군해운면갈성리갑총 (이미지)_4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용강군해운면갈성리갑총 (이미지)_5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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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조선고적조사보고 #일제강점기 #연구자료
    제공기관
    • · 촬영연도 : 1926
    • · 촬영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 소장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공공누리 유형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가)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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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물 정보
    저작물 설명

    어을동(於乙洞) 고성(古城)의 서북쪽 약 7정(町) 남짓한 곳에 있는 갈성리(葛城里) 부락의 북쪽 경지(耕地) 안에 2기(基)의 고분이 있다. 그 동북쪽에 있는 것을 갑분(甲墳)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서남쪽 도로에 접해 있는 것을 을분(乙墳)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을분은 이미 조사를 마친 것이다. 안에 전곽(塼槨)의 형적(形跡)이 없고 봉토 안에 와석(瓦石)을 섞지 않았다. 단지 내부에서 낙랑(樂浪)시대에 속하는 도기의 파편을 얻었을 뿐이었다.(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제1책 제121도-제124도) 그래서 1916(大正5)년 조사 시에는 갑분을 발굴하기로 하였다. 갑분은 평지에 축조되었고, 그 외형은 봉토는 흘러내려 없어져 다소 변형되었지만 역시 대체적으로 당초 평면 장방형(長方形)인 방대형(方臺形)이었던 형적이 보였다. 그 정상(頂上)은 조금 함몰되어 내부의 현실(玄室) 파괴 때문에 봉토가 떨어져 내린 듯한 여영(餘影)을 남기고 있었다. 그 크기는 동서쪽 지름 약 45척, 남북쪽 지름 약 56척, 주위의 경지를 제외하고 5척 5촌 내지 7척 5촌, 동쪽 및 남쪽은 가래로 인해 다소 잘려 무너졌고 서쪽은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어 지금 2, 3개의 새로운 묘지가 축조되었다. 봉토의 표면은 지초(芝草)에 덮여 있었다. 1916(大正5)년 11월 15일에 먼저 외형의 실측을 하고 오후에는 남쪽부터 발굴에 착수하였다. 17일 오후 3시경 분정(墳頂)에서 약 7척되는 남쪽에서 목재가 썩은 것과 같은 두께 1분 정도의 종선(縱線)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주의하여 이 흑선(黑線)을 더듬어 찾아 드디어 그 다음날에 이르러 폭 약 4척 5촌, 길이 약 11척 5촌의 구덩이(壙)진 것을 발견하였다. 이 종흑선(縱黑線)에 따라서 수직으로 내부의 토양을 파 올려 19일에 비로소 광저(壙底) 가까이에 도달하였다. 정점(頂點)에서 깊이 약 14척이었다. 북쪽 벽에 접하여 도호(陶壺)의 입 부분을 발견하게 됨에 따라 야경(夜警)을 두기로 하였다. 다음날(20일)에 나무를 대패로 세심하게 깎는 것처럼 흙을 벗겨냈다. 광상(壙床)이 나타나 유물을 수색하고 목관의 흔적이라고 여겨지는 흑선이 장방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구덩이(壙)의 북쪽에서 도옹(陶甕)·도호(陶壺) 종류를 발견하였다. 21일에 목관의 흔적 및 옹호(甕壺)의 위치를 실측하고 이들 유물을 꺼내었다. 22일에 고삐, 차축두(車軸頭), 그 밖에 구덩이 남쪽에 있던 유물을 출토하고, 23일에 나머지 도끼·창·검 등이 발견되어 이것으로써 이 고분의 조사를 끝냈다. 이 묘지는 규모가 작은 목곽(木槨)을 내부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우선 지반을 파서 깊이 약 11척이고, 넓이 약 4척 2촌 5분, 길이 약 10척 8촌 5분(높이 불명)의 목관을 약간 남북쪽의 위치에 넣었다. 이 목곽은 장지형(長指形)이고, 네 면의 측판(側板) 및 저판(底板)은 상당한 두께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저작물 설명
    어을동(於乙洞) 고성(古城)의 서북쪽 약 7정(町) 남짓한 곳에 있는 갈성리(葛城里) 부락의 북쪽 경지(耕地) 안에 2기(基)의 고분이 있다. 그 동북쪽에 있는 것을 갑분(甲墳)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서남쪽 도로에 접해 있는 것을 을분(乙墳)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을분은 이미 조사를 마친 것이다. 안에 전곽(塼槨)의 형적(形跡)이 없고 봉토 안에 와석(瓦石)을 섞지 않았다. 단지 내부에서 낙랑(樂浪)시대에 속하는 도기의 파편을 얻었을 뿐이었다.(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제1책 제121도-제124도) 그래서 1916(大正5)년 조사 시에는 갑분을 발굴하기로 하였다. 갑분은 평지에 축조되었고, 그 외형은 봉토는 흘러내려 없어져 다소 변형되었지만 역시 대체적으로 당초 평면 장방형(長方形)인 방대형(方臺形)이었던 형적이 보였다. 그 정상(頂上)은 조금 함몰되어 내부의 현실(玄室) 파괴 때문에 봉토가 떨어져 내린 듯한 여영(餘影)을 남기고 있었다. 그 크기는 동서쪽 지름 약 45척, 남북쪽 지름 약 56척, 주위의 경지를 제외하고 5척 5촌 내지 7척 5촌, 동쪽 및 남쪽은 가래로 인해 다소 잘려 무너졌고 서쪽은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어 지금 2, 3개의 새로운 묘지가 축조되었다. 봉토의 표면은 지초(芝草)에 덮여 있었다. 1916(大正5)년 11월 15일에 먼저 외형의 실측을 하고 오후에는 남쪽부터 발굴에 착수하였다. 17일 오후 3시경 분정(墳頂)에서 약 7척되는 남쪽에서 목재가 썩은 것과 같은 두께 1분 정도의 종선(縱線)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주의하여 이 흑선(黑線)을 더듬어 찾아 드디어 그 다음날에 이르러 폭 약 4척 5촌, 길이 약 11척 5촌의 구덩이(壙)진 것을 발견하였다. 이 종흑선(縱黑線)에 따라서 수직으로 내부의 토양을 파 올려 19일에 비로소 광저(壙底) 가까이에 도달하였다. 정점(頂點)에서 깊이 약 14척이었다. 북쪽 벽에 접하여 도호(陶壺)의 입 부분을 발견하게 됨에 따라 야경(夜警)을 두기로 하였다. 다음날(20일)에 나무를 대패로 세심하게 깎는 것처럼 흙을 벗겨냈다. 광상(壙床)이 나타나 유물을 수색하고 목관의 흔적이라고 여겨지는 흑선이 장방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구덩이(壙)의 북쪽에서 도옹(陶甕)·도호(陶壺) 종류를 발견하였다. 21일에 목관의 흔적 및 옹호(甕壺)의 위치를 실측하고 이들 유물을 꺼내었다. 22일에 고삐, 차축두(車軸頭), 그 밖에 구덩이 남쪽에 있던 유물을 출토하고, 23일에 나머지 도끼·창·검 등이 발견되어 이것으로써 이 고분의 조사를 끝냈다. 이 묘지는 규모가 작은 목곽(木槨)을 내부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우선 지반을 파서 깊이 약 11척이고, 넓이 약 4척 2촌 5분, 길이 약 10척 8촌 5분(높이 불명)의 목관을 약간 남북쪽의 위치에 넣었다. 이 목곽은 장지형(長指形)이고, 네 면의 측판(側板) 및 저판(底板)은 상당한 두께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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