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고적조사보고 : 대동강면제10호분구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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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촬영연도 : 1926
- · 촬영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 소장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공공누리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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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물 정보
- 저작물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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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의 외형은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당초에는 방대형(方臺形)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내부의 현실(玄室)과 함께 대체적으로 동서남북의 방위에 일치하고 있었다. 현실은 방형(方形)이고 남쪽에 면하며 크기는 동서쪽 9척 6촌(중앙부 10척 9촌 5분), 남북쪽 9척 6촌 5분(중앙부 10척 7촌 5분)이다. 벽은 전돌(塼) 1장 두께로 하고 측면이 부풀어 올라 있으며 남쪽에 연도를 열고 있었다. 연도의 넓이는 곽의 내벽인 곳에서 2척 9촌 8분, 길이는 그곳에서 4척 4촌, 연도는 밖을 향해서 서서히 넓어져 그 가장자리에서 3척 5촌이었다. 주변 벽은 일반적인 긴 것(長手)은 평적(平積) 3층, 잘린 것(小口)은 종적(縱積) 1층을 상호 반복한다. 그 상부는 궁륭상(穹?狀)으로 만든 것인데 토착민 때문에 벽 천장의 전돌을 도난당해 벽이 잔존된 것은 높이 3촌 2분 내지 2척에 지나지 않았다. 내부의 바닥(床)은 전돌을 2층으로 깔고, 아래층은 세로로 포부(布敷), 위층은 망대부(網代敷)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곽 안의 연도 입구의 맞은편 왼쪽 옆에 전축(塼築)의 격벽이 있고, 동서 양실(兩室)로 나뉘어 벽은 높이 2척 6촌 6분인 곳까지 남아 있었다. 게다가 서실(西室)의 북쪽 벽 중앙부에서 다시 짧은 격벽을 남쪽으로 향해서 2척 8촌이다. 잔존되어 있는 높이는 전자(前者)와 마찬가지로 이 짧은 격벽은 부부 양관(兩棺)을 경계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이 서실에서 은제의 팔찌, 반지, 호박 등의 패옥이 나왔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유해(遺骸)를 매장한 곳 같다. 그리고 동실(東室)에서 도기나 칠기의 잔편이 나왔기 때문에 당초에 명기(明器)를 넣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이미 설명하였듯이 제2호분, 제3호분, 제6호분과 같이 목곽(木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현실(玄室)의 내부를 격벽으로 관실(棺室)과 명기실(明器室)로 구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묘지는 이것과 동일한 생각에 의해 전벽을 현실 내에 만들었던 것일 것이다. 벽을 쌓는데 사용된 전돌(塼)은 그 표면의 문양은 긴 것(長手) 4종, 잘린 것(小口) 8종이었다. 이 중 1장의 전돌에 긴 것과 잘린 것 양쪽 문양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4장 있었다. 긴 것, 잘린 것 모두 대부분은 직선 문양, S자 문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신기한 것은 문자명(文字銘)을 가진 것이 3종 있었던 점이다. 갑(甲)은 「왕(王)」, 을(乙)은 「오왕의일(五王宜日)」, 병(丙)은 「왕평(王平)」으로 왕(王), 왕의(王宜), 왕평(王平)은 소위 한예(漢隸)였으나, 「왕의(王宜)」의 상하에 있는 문자는 전서(篆書)에서 「오일(五日)」이라고 읽는다. 이 오일은 어떠한 뜻인지 해독하기 어렵다. 이 「왕평」, 「왕의」의 왕은 죽은 사람의 성(姓)이 되는 것이고, 평의(平宜)는 그 이름이 아니고 죽은 사람의 평안이나 자손의 행복을 기원하는 길상어(吉祥語)일 것이다. 낙랑시대의 전돌에는 종종 문자명을 가진 것이 있는데 제1호분의 전돌에「왕(王)」이라는 한 글자가 있는 것과 이 고분에서 나온 것 뿐이다.
저작물 설명고분의 외형은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당초에는 방대형(方臺形)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내부의 현실(玄室)과 함께 대체적으로 동서남북의 방위에 일치하고 있었다. 현실은 방형(方形)이고 남쪽에 면하며 크기는 동서쪽 9척 6촌(중앙부 10척 9촌 5분), 남북쪽 9척 6촌 5분(중앙부 10척 7촌 5분)이다. 벽은 전돌(塼) 1장 두께로 하고 측면이 부풀어 올라 있으며 남쪽에 연도를 열고 있었다. 연도의 넓이는 곽의 내벽인 곳에서 2척 9촌 8분, 길이는 그곳에서 4척 4촌, 연도는 밖을 향해서 서서히 넓어져 그 가장자리에서 3척 5촌이었다. 주변 벽은 일반적인 긴 것(長手)은 평적(平積) 3층, 잘린 것(小口)은 종적(縱積) 1층을 상호 반복한다. 그 상부는 궁륭상(穹?狀)으로 만든 것인데 토착민 때문에 벽 천장의 전돌을 도난당해 벽이 잔존된 것은 높이 3촌 2분 내지 2척에 지나지 않았다. 내부의 바닥(床)은 전돌을 2층으로 깔고, 아래층은 세로로 포부(布敷), 위층은 망대부(網代敷)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곽 안의 연도 입구의 맞은편 왼쪽 옆에 전축(塼築)의 격벽이 있고, 동서 양실(兩室)로 나뉘어 벽은 높이 2척 6촌 6분인 곳까지 남아 있었다. 게다가 서실(西室)의 북쪽 벽 중앙부에서 다시 짧은 격벽을 남쪽으로 향해서 2척 8촌이다. 잔존되어 있는 높이는 전자(前者)와 마찬가지로 이 짧은 격벽은 부부 양관(兩棺)을 경계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이 서실에서 은제의 팔찌, 반지, 호박 등의 패옥이 나왔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유해(遺骸)를 매장한 곳 같다. 그리고 동실(東室)에서 도기나 칠기의 잔편이 나왔기 때문에 당초에 명기(明器)를 넣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이미 설명하였듯이 제2호분, 제3호분, 제6호분과 같이 목곽(木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현실(玄室)의 내부를 격벽으로 관실(棺室)과 명기실(明器室)로 구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묘지는 이것과 동일한 생각에 의해 전벽을 현실 내에 만들었던 것일 것이다. 벽을 쌓는데 사용된 전돌(塼)은 그 표면의 문양은 긴 것(長手) 4종, 잘린 것(小口) 8종이었다. 이 중 1장의 전돌에 긴 것과 잘린 것 양쪽 문양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4장 있었다. 긴 것, 잘린 것 모두 대부분은 직선 문양, S자 문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신기한 것은 문자명(文字銘)을 가진 것이 3종 있었던 점이다. 갑(甲)은 「왕(王)」, 을(乙)은 「오왕의일(五王宜日)」, 병(丙)은 「왕평(王平)」으로 왕(王), 왕의(王宜), 왕평(王平)은 소위 한예(漢隸)였으나, 「왕의(王宜)」의 상하에 있는 문자는 전서(篆書)에서 「오일(五日)」이라고 읽는다. 이 오일은 어떠한 뜻인지 해독하기 어렵다. 이 「왕평」, 「왕의」의 왕은 죽은 사람의 성(姓)이 되는 것이고, 평의(平宜)는 그 이름이 아니고 죽은 사람의 평안이나 자손의 행복을 기원하는 길상어(吉祥語)일 것이다. 낙랑시대의 전돌에는 종종 문자명을 가진 것이 있는데 제1호분의 전돌에「왕(王)」이라는 한 글자가 있는 것과 이 고분에서 나온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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