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고적조사보고 : 대동강면제2호분구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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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촬영연도 : 1926
- · 촬영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 소장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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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물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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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 위를 파내면 8, 9척의 광저(壙底)에 먼저 점토를 깔고, 7·8촌의 율재(栗材) 3개를 중앙과 양쪽 끝에 가로로 놓아 마룻귀틀로 하고, 그 위에 같은 크기의 율재를 나란히 놓아 바닥을 만들었다. 사방의 벽은 같은 율재를 마치 교창(校倉) 만들기와 같이 쌓아 올려 축조하고, 어느 높이에 이르러 이 벽 위에 율재를 다시 옆으로 나열해 천장의 구조를 이루고 네 벽의 외면은 반 장 두께이다. 문양을 가지고 있는 2가지 종류의 전돌(塼)로 막고 다시금 그 밖을 두껍게 점토로 둘러 빗물 침투를 막은 뒤 비로소 봉토를 쌓아 방대상(方臺狀)의 외형을 이룬 것이다. 나중에 설명할 제6호분에는 천장 위에도 한 장 가량의 복전(覆塼)이 있었다. 이 고분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단 이 고분은 후세에 발굴, 봉토, 혼란의 흔적이 있고 천장에 복전과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도굴 때 옮겨진 것인지 모르지만 이는 불분명하다. 목곽(木槨)을 구성하는 목재를 임학박사인 가와이 시타로(河合?太郞) 씨에게 감정을 청해 그에게서 ‘목재는 조선산 율재(栗材)이다. 역시 조직이 완전하고 충분히 강하다. 율재는 흙 속에서 내구력이 매우 커서 고분의 상재(床材)로서 매우 적당한 것이다’라는 보고를 받았는데 우리가 처음부터 상상했듯이 과연 율재였다. 이에 의해 다른 제3호분, 제6호분의 곽재(槨材)도 마찬가지로 율재인 것이 확실해졌다. 목곽의 외면에는 이미 기술한 오야리(梧野里) 고분이나 다음에 설명할 제3호분과 같이 바로 점토를 접착하지 않고 그 사이를 반장(半枚) 두께의 전돌(塼)을 두른 것은 그것들에 비해 한발 앞선 형식이다. 축조 초기에는 봉토를 침투하는 빗물은 점토층 때문에 차단되어 곽 안에 들어가기 힘들지만 목곽(木槨)은 차차 썩어 결국에는 봉토의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봉토와 함께 곽(槨) 안에 추락하기에 이르렀다. 또 네 벽의 곽재(槨材)도 썩어 그 밖에 있는 전토(塼土)가 내부에 솟아올랐다. 천장을 덮었던 점토도 네 벽 밖을 둘렀고 전돌도 봉토도 한데 섞여 아주 혼란했다. 이 때문에 위에서 침투해오는 빗물이 사정없이 곽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이르고, 바닥 아래의 점토에 차단되어 이에 고이게 되었다. 일찍이 벽이나 천장을 구성했던 곽(槨), 재(材)는 긴 세월 동안 썩어 진흙 속에 완전히 형적(形迹)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다행이 바닥 부근은 항상 빗물이 내려 고였기 때문에 목곽 하부, 목벽 하부, 특히 바닥을 구성하는 목재는 거의 무사히 그 형태를 남기고 있고 나중에 설명할 제6호분의 발굴상태와 함께 축조 당시의 형식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목곽은 거의 남쪽에 면하고 봉토의 방대형의 우각이 사방을 가리키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은 흥미 있는 사실이다. 그 크기는 동서쪽 약 11척 2촌, 남북쪽 약 11척 6촌 5분인데 높이는 전혀 불분명하다. 상재는 동서쪽 방향에 가로로 늘어 놓았는데 모두 16개가 있었다. 지금은 양쪽 모두 썩고 메말라 있지만 당초 약 7촌의 폭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또 두께는 지금 7, 8촌 정도이다.
저작물 설명구릉 위를 파내면 8, 9척의 광저(壙底)에 먼저 점토를 깔고, 7·8촌의 율재(栗材) 3개를 중앙과 양쪽 끝에 가로로 놓아 마룻귀틀로 하고, 그 위에 같은 크기의 율재를 나란히 놓아 바닥을 만들었다. 사방의 벽은 같은 율재를 마치 교창(校倉) 만들기와 같이 쌓아 올려 축조하고, 어느 높이에 이르러 이 벽 위에 율재를 다시 옆으로 나열해 천장의 구조를 이루고 네 벽의 외면은 반 장 두께이다. 문양을 가지고 있는 2가지 종류의 전돌(塼)로 막고 다시금 그 밖을 두껍게 점토로 둘러 빗물 침투를 막은 뒤 비로소 봉토를 쌓아 방대상(方臺狀)의 외형을 이룬 것이다. 나중에 설명할 제6호분에는 천장 위에도 한 장 가량의 복전(覆塼)이 있었다. 이 고분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단 이 고분은 후세에 발굴, 봉토, 혼란의 흔적이 있고 천장에 복전과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도굴 때 옮겨진 것인지 모르지만 이는 불분명하다. 목곽(木槨)을 구성하는 목재를 임학박사인 가와이 시타로(河合?太郞) 씨에게 감정을 청해 그에게서 ‘목재는 조선산 율재(栗材)이다. 역시 조직이 완전하고 충분히 강하다. 율재는 흙 속에서 내구력이 매우 커서 고분의 상재(床材)로서 매우 적당한 것이다’라는 보고를 받았는데 우리가 처음부터 상상했듯이 과연 율재였다. 이에 의해 다른 제3호분, 제6호분의 곽재(槨材)도 마찬가지로 율재인 것이 확실해졌다. 목곽의 외면에는 이미 기술한 오야리(梧野里) 고분이나 다음에 설명할 제3호분과 같이 바로 점토를 접착하지 않고 그 사이를 반장(半枚) 두께의 전돌(塼)을 두른 것은 그것들에 비해 한발 앞선 형식이다. 축조 초기에는 봉토를 침투하는 빗물은 점토층 때문에 차단되어 곽 안에 들어가기 힘들지만 목곽(木槨)은 차차 썩어 결국에는 봉토의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봉토와 함께 곽(槨) 안에 추락하기에 이르렀다. 또 네 벽의 곽재(槨材)도 썩어 그 밖에 있는 전토(塼土)가 내부에 솟아올랐다. 천장을 덮었던 점토도 네 벽 밖을 둘렀고 전돌도 봉토도 한데 섞여 아주 혼란했다. 이 때문에 위에서 침투해오는 빗물이 사정없이 곽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이르고, 바닥 아래의 점토에 차단되어 이에 고이게 되었다. 일찍이 벽이나 천장을 구성했던 곽(槨), 재(材)는 긴 세월 동안 썩어 진흙 속에 완전히 형적(形迹)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다행이 바닥 부근은 항상 빗물이 내려 고였기 때문에 목곽 하부, 목벽 하부, 특히 바닥을 구성하는 목재는 거의 무사히 그 형태를 남기고 있고 나중에 설명할 제6호분의 발굴상태와 함께 축조 당시의 형식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목곽은 거의 남쪽에 면하고 봉토의 방대형의 우각이 사방을 가리키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은 흥미 있는 사실이다. 그 크기는 동서쪽 약 11척 2촌, 남북쪽 약 11척 6촌 5분인데 높이는 전혀 불분명하다. 상재는 동서쪽 방향에 가로로 늘어 놓았는데 모두 16개가 있었다. 지금은 양쪽 모두 썩고 메말라 있지만 당초 약 7촌의 폭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또 두께는 지금 7, 8촌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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