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고적조사보고 : 강동군 만달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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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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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촬영연도 : 1916
- · 촬영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 소장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공공누리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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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물 정보
- 저작물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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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강동군 만달면 승호동(勝湖洞)에 있는 민가(民家)의 서북쪽, 만달산(晩達山)의 서남쪽 산기슭의 임야 및 경지 일대에 약 200기(基)의 고분군(古墳群)이 있다. 이들 고분 중 단지 불과 2기(基)가 석총을 가질 뿐이고 그 이외는 모두 토분이다. 석곽(石槨)은 횡광식(橫擴式)이고 하나의 고분 중에 2개의 곽(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적지 않고 현실(玄室)은 고구려의 분묘(墳墓)에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선반받침(持送)식 천장을 가지고 있다. 석곽의 재료에는 부근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석회석(石灰石)을 이용하고 있다. 내면(內面)에는 회반죽(漆?)을 칠하고 그 외형은 모두 거의 불분명하나 석총(石塚)은 방형(方形)인 기부(基部)를 가지고 있다. 토분 또한 방대형(方臺形)으로 되어 있는 것과 같이 그 봉토(封土)가 완전한 그 형적(形迹)이 존재한다. 만달면 승호동의 동쪽의 만달면 읍릉동(邑陵洞)에도 민가(民家)의 동북쪽 및 북쪽 밭과 서쪽 산 위에 약 20여 기(基)의 고분이 점재(點在)하고 있고 모두 석곽(石槨)의 일부를 노출시키고 있다. 만달면 승호동의 고분군을 서북쪽으로 떨어져서 약 반 리(里)에 있는 만달면 방암동(芳岩洞)에도 또한 약 670기(基)의 고분이 산재하고 있다. 이상 기술한 승호동, 읍릉동 및 방암동에 걸쳐 있는 약 300기(基)의 고분은 그 외형 및 석곽(石槨) 내부의 형상(形狀)으로 관찰하면 모두 고구려 시대의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마 장수왕(長壽王)이 평양 천도(遷都)한 이후 이 지방에 있던 유력자(有力者)의 분묘일 것이고 현재에서 거슬러 올라가 약 1400년 전후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 같다. 더욱이 이들 고분의 거의 전부는 일찍이 발굴의 재앙을 만난 것과 같은 흔적이 있다. 이에 덧붙이자면 여러 해를 거쳐 오랫동안 홀로 인위적으로 여겨지는 천연적 파광괴(破壙壞)도 그 힘을 다했고 지금 완전하게 존재하는 것 1기(基)도 인지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 1917(大正6)년 3월 17일부터 19일에 이르기까지 3일에 걸쳐서 이들 300기(基)의 고분 중 약간 존재하는 2기(基)의 석총(石塚)과 토분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봉토가 비교적 완전하게 존재하는 1기(基)의 토분을 조사하였다.
저작물 설명평안남도 강동군 만달면 승호동(勝湖洞)에 있는 민가(民家)의 서북쪽, 만달산(晩達山)의 서남쪽 산기슭의 임야 및 경지 일대에 약 200기(基)의 고분군(古墳群)이 있다. 이들 고분 중 단지 불과 2기(基)가 석총을 가질 뿐이고 그 이외는 모두 토분이다. 석곽(石槨)은 횡광식(橫擴式)이고 하나의 고분 중에 2개의 곽(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적지 않고 현실(玄室)은 고구려의 분묘(墳墓)에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선반받침(持送)식 천장을 가지고 있다. 석곽의 재료에는 부근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석회석(石灰石)을 이용하고 있다. 내면(內面)에는 회반죽(漆?)을 칠하고 그 외형은 모두 거의 불분명하나 석총(石塚)은 방형(方形)인 기부(基部)를 가지고 있다. 토분 또한 방대형(方臺形)으로 되어 있는 것과 같이 그 봉토(封土)가 완전한 그 형적(形迹)이 존재한다. 만달면 승호동의 동쪽의 만달면 읍릉동(邑陵洞)에도 민가(民家)의 동북쪽 및 북쪽 밭과 서쪽 산 위에 약 20여 기(基)의 고분이 점재(點在)하고 있고 모두 석곽(石槨)의 일부를 노출시키고 있다. 만달면 승호동의 고분군을 서북쪽으로 떨어져서 약 반 리(里)에 있는 만달면 방암동(芳岩洞)에도 또한 약 670기(基)의 고분이 산재하고 있다. 이상 기술한 승호동, 읍릉동 및 방암동에 걸쳐 있는 약 300기(基)의 고분은 그 외형 및 석곽(石槨) 내부의 형상(形狀)으로 관찰하면 모두 고구려 시대의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마 장수왕(長壽王)이 평양 천도(遷都)한 이후 이 지방에 있던 유력자(有力者)의 분묘일 것이고 현재에서 거슬러 올라가 약 1400년 전후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 같다. 더욱이 이들 고분의 거의 전부는 일찍이 발굴의 재앙을 만난 것과 같은 흔적이 있다. 이에 덧붙이자면 여러 해를 거쳐 오랫동안 홀로 인위적으로 여겨지는 천연적 파광괴(破壙壞)도 그 힘을 다했고 지금 완전하게 존재하는 것 1기(基)도 인지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 1917(大正6)년 3월 17일부터 19일에 이르기까지 3일에 걸쳐서 이들 300기(基)의 고분 중 약간 존재하는 2기(基)의 석총(石塚)과 토분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봉토가 비교적 완전하게 존재하는 1기(基)의 토분을 조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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