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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1유형 : 출처표시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2) 제2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3) 제3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4)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5) 만료공공저작물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이 없이 자유롭게 이용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 없음

    조선고적조사보고 : 용강군 봉산면 옥도리 고분 (이미지)

    이미지

    조선고적조사보고 : 용강군 봉산면 옥도리 고분 (이미지)_1번 사진
    조선고적조사보고 : 용강군 봉산면 옥도리 고분 (이미지)_2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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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태그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조선고적조사보고 #일제강점기 #연구자료
    제공기관
    • · 촬영연도 : 1916
    • · 촬영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 소장기관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공공누리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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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물 정보
    저작물 설명

    고구려라고 명칭을 붙이기 보다는 부여족의 고분이라고 칭하는 쪽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 형식의 고분은 고구려 남침 이전의 부여족에 이미 분포하고 있었던 것을 나타내는 것이거나 그 마한족(馬韓族)을 통일하였던 백제인 왕족 일군(一群)과 같이 부여족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 일로 이들 고분에 대응하여 생각해보면 설명이 굳이 어렵지 않다. 나는 이 종류의 고분 분포는 오히려 이와 같은 이유로 해독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믿는다. 만주에 존재하는 고구려 분묘의 형식과 유사하다. 아마 양자 동일시대로서 게다가 동일민족의 손에 의한 것이다. 일보 후퇴하여 고인돌을 가령 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생각하면 대동강 강가의 판판한 땅 또는 압록강 강가의 편평한 땅 또는 집안, 통화, 회인, 관전(?甸) 등의 고구려 고분군 중에 과연 이와 같은 고인돌이 함께 혼잡하여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것은 매우 연구할만 한 일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집안현 통구에 있는 소위 장군총의 왼쪽 부분 뒤쪽에 1개의 고인돌형 분묘가 있는 것을 볼 뿐이다. 이것을 매우 잘 눈여겨 들여다보면 천장석의 처마 밑에 둥근 도랑(溝)을 만들었다. 그 고인돌은 장군총에 있어서와 같이 그 밑의 대를 멋진 돌로 몇 중으로 확실히 쌓아 겹치고 있다. 역시 이것은 언뜻 보면 고인돌처럼 생각되지만 그 개석을 보면 장군총적인 고분의 약식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이와 같은 분묘가 고인돌이라면 나는 기꺼이 바로 이 설에 복종하겠지만 불행히도 조선 내지 각 군의 고인돌은 그 구조가 전적으로 간단하고 천장의 처마 끝에 둥근 도랑이 없다. 또한 그 밑에 멋있는 계단적 적석(積石) 대(臺)가 없다. 그러므로 이 장군총이 인접하는 1개의 고분을 바로 기선(期鮮) 각 도의 고인돌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이론상은 물론 비교에 있어서 그 당(當)을 결여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작물 설명
    고구려라고 명칭을 붙이기 보다는 부여족의 고분이라고 칭하는 쪽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 형식의 고분은 고구려 남침 이전의 부여족에 이미 분포하고 있었던 것을 나타내는 것이거나 그 마한족(馬韓族)을 통일하였던 백제인 왕족 일군(一群)과 같이 부여족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 일로 이들 고분에 대응하여 생각해보면 설명이 굳이 어렵지 않다. 나는 이 종류의 고분 분포는 오히려 이와 같은 이유로 해독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믿는다. 만주에 존재하는 고구려 분묘의 형식과 유사하다. 아마 양자 동일시대로서 게다가 동일민족의 손에 의한 것이다. 일보 후퇴하여 고인돌을 가령 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생각하면 대동강 강가의 판판한 땅 또는 압록강 강가의 편평한 땅 또는 집안, 통화, 회인, 관전(?甸) 등의 고구려 고분군 중에 과연 이와 같은 고인돌이 함께 혼잡하여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것은 매우 연구할만 한 일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집안현 통구에 있는 소위 장군총의 왼쪽 부분 뒤쪽에 1개의 고인돌형 분묘가 있는 것을 볼 뿐이다. 이것을 매우 잘 눈여겨 들여다보면 천장석의 처마 밑에 둥근 도랑(溝)을 만들었다. 그 고인돌은 장군총에 있어서와 같이 그 밑의 대를 멋진 돌로 몇 중으로 확실히 쌓아 겹치고 있다. 역시 이것은 언뜻 보면 고인돌처럼 생각되지만 그 개석을 보면 장군총적인 고분의 약식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이와 같은 분묘가 고인돌이라면 나는 기꺼이 바로 이 설에 복종하겠지만 불행히도 조선 내지 각 군의 고인돌은 그 구조가 전적으로 간단하고 천장의 처마 끝에 둥근 도랑이 없다. 또한 그 밑에 멋있는 계단적 적석(積石) 대(臺)가 없다. 그러므로 이 장군총이 인접하는 1개의 고분을 바로 기선(期鮮) 각 도의 고인돌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이론상은 물론 비교에 있어서 그 당(當)을 결여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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