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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1유형 : 출처표시
    - 출처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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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2) 제2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3) 제3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4)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5) 만료공공저작물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이 없이 자유롭게 이용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 없음

    경남_남해_신흥사 삼층석탑

    이미지

    경남_남해_신흥사 삼층석탑_1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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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태그
    #남해군 #신흥사 #원효대사 #당항리
    제공기관
    • · 촬영연도 : -
    • · 촬영기관 : 경상남도 남해군
    • · 소장기관 : 경상남도 남해군
    공공누리 유형

    경상남도 남해군이(가)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저작물 정보
    저작물 설명

    신흥사의 옛 터에 있었던 3층 석탑으로, 탑을 품었던 절은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던 곳이나, 현재는 터만 남아 당항리 마을로 변해버렸다. 절터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탑을 몇 차례 옮기다 1957년 마을 주민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는데, 옮길 때마다 각 부분의 돌들이 없어지거나 훼손되었다. 현재는 기단부(基壇部)가 모두 없어지고 탑신(塔身)의 1층 몸돌과 1·2·3층 지붕돌, 머리장식인 보개(寶蓋:뚜껑모양의 돌), 보륜(寶輪:수레바퀴모양의 돌) 만이 남아 있다. 고려말·조선초 즈음에 세운 석탑으로 추측되는데, 탑신의 2·3층 몸돌은 후에 보충해 놓은 것이다. (전문 설명) 지금은 당항리 마을로 변해버린 옛 신흥사지(新興寺地)(신라 신문왕(神文王)때 원효대사가 창건)에 있었던 삼층석탑(三層石塔)이다. 절터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몇 차례 이전되다가 주민들에 의하여 195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운 것이다. 이전 될 때마다 탑(塔)의 부품(部品)이 훼손(毁損) 또는 망실(亡失)되어 온 것으로 보여지는데 기단부는 모두 없어졌으며, 일층옥신석(一層屋身石)과 1, 2, 3층의 옥개석 상륜부(相輪部)의 보개(寶蓋)와 보륜(寶輪)만이 남아 있다. 2·3층의 옥신석(屋身石)은 후일에 보충(補充)한 것이고 높이 2.5m이며 제작 연대는 고려말 조선초로 추정된다.

    저작물 설명

    신흥사의 옛 터에 있었던 3층 석탑으로, 탑을 품었던 절은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던 곳이나, 현재는 터만 남아 당항리 마을로 변해버렸다. 절터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탑을 몇 차례 옮기다 1957년 마을 주민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는데, 옮길 때마다 각 부분의 돌들이 없어지거나 훼손되었다. 현재는 기단부(基壇部)가 모두 없어지고 탑신(塔身)의 1층 몸돌과 1·2·3층 지붕돌, 머리장식인 보개(寶蓋:뚜껑모양의 돌), 보륜(寶輪:수레바퀴모양의 돌) 만이 남아 있다. 고려말·조선초 즈음에 세운 석탑으로 추측되는데, 탑신의 2·3층 몸돌은 후에 보충해 놓은 것이다. (전문 설명) 지금은 당항리 마을로 변해버린 옛 신흥사지(新興寺地)(신라 신문왕(神文王)때 원효대사가 창건)에 있었던 삼층석탑(三層石塔)이다. 절터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몇 차례 이전되다가 주민들에 의하여 195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운 것이다. 이전 될 때마다 탑(塔)의 부품(部品)이 훼손(毁損) 또는 망실(亡失)되어 온 것으로 보여지는데 기단부는 모두 없어졌으며, 일층옥신석(一層屋身石)과 1, 2, 3층의 옥개석 상륜부(相輪部)의 보개(寶蓋)와 보륜(寶輪)만이 남아 있다. 2·3층의 옥신석(屋身石)은 후일에 보충(補充)한 것이고 높이 2.5m이며 제작 연대는 고려말 조선초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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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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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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