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제공기관
    등록년도
    ~
    저작물 유형
    저작물 구분
    설명 보기:각 기관에서 제공해주신 원문DB 공공저작물로 바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각 기관에서 제공해주신 원문DB 공공저작물로 바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설명 보기: 각 기관 사이트에서 연계한 저작물로 기관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각 기관 사이트에서 연계한 저작물로 기관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이용조건 이란

    1) 제1유형 : 출처표시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2) 제2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가능

    3) 제3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출처표시
    - 상업적, 비상업적 이용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4)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 출처표시
    -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5) 만료공공저작물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이 없이 자유롭게 이용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 없음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

    이미지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1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2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3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4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5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6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7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8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9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10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11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12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13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14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15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16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17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18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19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20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21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22번 사진
    육군박물관_부산진순절도_23번 사진
    /
    279 363
    공유하기
    관련태그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회화 #기록화 #부산진순절도
    제공기관
    • · 촬영연도 :
    • · 촬영기관 :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 · 소장기관 :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공공누리 유형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이(가)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저작물 정보
    저작물 설명

    1592년 음력 4월 14일 부산진에 쳐들어 온 일본군에 맞서 싸운 부산진첨절제사 정발(鄭撥, 1553~1592)과 휘하 병사들의 항전과 순절을 묘사한 역사기록화이다. 1709년에 처음 그려진 것을 동래무청(東萊武廳)의 화원 변박(卞璞)이 1760년에 다시 그린 것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묘사하는 부감법을 활용하였으며, 그림 오른쪽 중간에 부산진 성곽이 있고, 그 주변을 왜병 및 왜선이 빈틈없이 에워싼 모습은 조선군과 일본군의 심한 전력차를 느끼게 한다. 성문 위에는 수자기(帥字旗) 아래 검은 갑옷[黑衣]을 입은 정발 장군과 휘하 군사들이 몰려오는 일본군에 맞서 활을 쏘고 있고, 성내 전각에서 애첩 애향(愛香)이 장도를 들고 자결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은 효종대에 동래부사(東萊府使)를 지낸 민정중(閔鼎重, 1628~1692)이 기록한 「임진유문(壬辰遺聞)」과 이를 바탕으로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저술한 「동래남문비(東萊南門碑)」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와 함께 임진왜란을 묘사한 가장 대표적인 회화 유물로서, 외세에 맞서 국가를 수호하는 민족정기와 군인정신을 일깨워준다.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제391호 지정품.

    저작물 설명
    1592년 음력 4월 14일 부산진에 쳐들어 온 일본군에 맞서 싸운 부산진첨절제사 정발(鄭撥, 1553~1592)과 휘하 병사들의 항전과 순절을 묘사한 역사기록화이다. 1709년에 처음 그려진 것을 동래무청(東萊武廳)의 화원 변박(卞璞)이 1760년에 다시 그린 것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묘사하는 부감법을 활용하였으며, 그림 오른쪽 중간에 부산진 성곽이 있고, 그 주변을 왜병 및 왜선이 빈틈없이 에워싼 모습은 조선군과 일본군의 심한 전력차를 느끼게 한다. 성문 위에는 수자기(帥字旗) 아래 검은 갑옷[黑衣]을 입은 정발 장군과 휘하 군사들이 몰려오는 일본군에 맞서 활을 쏘고 있고, 성내 전각에서 애첩 애향(愛香)이 장도를 들고 자결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은 효종대에 동래부사(東萊府使)를 지낸 민정중(閔鼎重, 1628~1692)이 기록한 「임진유문(壬辰遺聞)」과 이를 바탕으로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저술한 「동래남문비(東萊南門碑)」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와 함께 임진왜란을 묘사한 가장 대표적인 회화 유물로서, 외세에 맞서 국가를 수호하는 민족정기와 군인정신을 일깨워준다.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제391호 지정품.
    다운로드

    ※ 고화질의 대용량(20~30MB/장)사진의 경우 다운로드에 다소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출처표시 예시

    예시
    01
    본 저작물은 OOO(기관명)에서 OO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유형번호]유형으로 개방한 저작물명(작성자:OOO)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OOO(기관명), OOO(홈페이지 주소)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위 내용은 예시이므로 작성연도 및 해당 기관명과 홈페이지 주소, 작성자명 기입

    예시
    02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유형번호]유형에 따라 [기관명(사이트 URL), 작성자:OOO]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예시
    03
    * 출처 -[기관명], [사이트명(사이트상세 URL)]

    유의사항

    <이용자가 가지는 권리 >

    1. 온·오프라인 상에 공유 및 이용 : 온·오프라인을 통하여 공유 및 이용 가능

    2. 저작물 변경 : 2차적 저작물로 변경하여 이용 가능

    3. 이 저작물은 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작물 사용 조건>

    - 출처 표시 : 저작물의 출처를 표시하셔야 합니다.

    공공기관이 후원 한다고 하거나 공공기관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제 3자가 오인하게 하는 표시를 해서는 안됩니다.

    < 알아야 할 사항 >

    I. 이용조건의 표시 및 변경

    1. 이용자가 공공누리 저작물 활용 시 출처표시를 꼭 해 주셔야 합니다.

    2. 공공누리 저작물의 이용조건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용자가 이용조건 변경 전 사용하셨다면 해당저작물 한해 용도변경 없이 계속 이용할 수 있습니다.

    II. 이용조건의 위반

    1. 이용자가 공공누리 이용조건을 위반할 경우 그 즉시 이용허락이 종료됩니다.

    2. 이용자가 이용조건 위반 후 지속적으로 공공저작물을 이용할 경우 저작권 침해가 성립되므로 형사상, 민사상 책임을 부담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