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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조건(출처표시 포함) 없음

    부평 도호부 관아_60

    이미지

    부평 도호부 관아_60_1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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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태그
    #문화재청 #부평 도호부 관아 #시도유형문화재 #목조문화재 #관아건축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제공기관
    • · 촬영연도 : 2022
    • · 촬영기관 : 국가유산청
    • · 소장기관 : 국가유산청
    공공누리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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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물 정보
    저작물 설명

    지금 부평초등학교 교정 모퉁이에 있는 옛 부평도호부 관아 건물이다. 부평도호부관아는 숙종 3년(1677)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세워진 내력을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 의종 4년(1150)에 안남도호부로, 고종2년(1215)에 계양도호부로,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 부평부가 부평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부평도호부로 승격이 되면서 관아 건립에 착수하여 약 5년 후(태종 18년, 1418)에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관아 옆에 보호되고 있으며 이때 풍치목으로 심어진 듯한 은행나무의 수령이 약 600여년쯤 되는 것과도 일치한다. 《부평부읍지》에 의하면 부평도호부 내에는 동헌 외에 객사·동서 삼문·근민당(近民堂)·좌우 익랑·사령청·향청·포도청·훈무당·부창 등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아 규모는 인천도호부를 능가하는 것으로 이는 부평이 고려시대 이래로 내려온 웅부(雄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근래까지도 동헌·객사·근민당·내아(內衙) 등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초등학교를 세우면서 대부분의 건물은 헐어버리고 현존 건물만 학교 운동장 한 모퉁이로 이전하였다. 이전 당시에는 1m 높이의 석축 위에 지은 “ㄱ”자형 집이었는데, 1968년 다시 옮기면서 석축과 날개를 떼어버리고 “一자” 건물로 바뀌어 정면 6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도리집이 되었다. 이로 미루어 이 건물은 예전 형태로 보아 동헌이나 현감의 살림채였던 내아로 추측한다. 건축 양식은 합각지붕을 한 정면 6칸, 측면 2칸의 굴도리집으로, 포작(包作)은 없다. 이 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세벌대의 장대석과 고막이, 네모꼴 초석, 그리고 긴장대석을 이용하여 쌓은 욕은지(浴恩池)라 부르는 네모꼴 연못이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생부인 장헌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1년에 한 차례씩 전배하였다. 1789에는 먼저 김포 장릉을 전배하고 현륭원(사도세자의 원)을 참배하였다. 이때 정조는 부평에 들러 부사를 인견하며 활을 쏘고 이 곳 욕은지에서 손을 씻었다 한다. 긴 장대석을 이용하여 단을 쌓거나 연못을 네모꼴로 만드는 것 등은 조선 시대의 전형적 구조 기법이다. 남아 있는 석축의 흔적과 초석, 둥근 기둥과 함께 이 건물이 17세기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1m 이상의 높이로 석축의 대를 구축하는 기법이나 ㄱ자형 의장설계도 조선 중기 건축의 특색이다.

    저작물 설명
    지금 부평초등학교 교정 모퉁이에 있는 옛 부평도호부 관아 건물이다. 부평도호부관아는 숙종 3년(1677)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세워진 내력을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 의종 4년(1150)에 안남도호부로, 고종2년(1215)에 계양도호부로,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 부평부가 부평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모든 정황으로 볼 때 부평도호부로 승격이 되면서 관아 건립에 착수하여 약 5년 후(태종 18년, 1418)에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관아 옆에 보호되고 있으며 이때 풍치목으로 심어진 듯한 은행나무의 수령이 약 600여년쯤 되는 것과도 일치한다. 《부평부읍지》에 의하면 부평도호부 내에는 동헌 외에 객사·동서 삼문·근민당(近民堂)·좌우 익랑·사령청·향청·포도청·훈무당·부창 등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아 규모는 인천도호부를 능가하는 것으로 이는 부평이 고려시대 이래로 내려온 웅부(雄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근래까지도 동헌·객사·근민당·내아(內衙) 등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초등학교를 세우면서 대부분의 건물은 헐어버리고 현존 건물만 학교 운동장 한 모퉁이로 이전하였다. 이전 당시에는 1m 높이의 석축 위에 지은 “ㄱ”자형 집이었는데, 1968년 다시 옮기면서 석축과 날개를 떼어버리고 “一자” 건물로 바뀌어 정면 6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도리집이 되었다. 이로 미루어 이 건물은 예전 형태로 보아 동헌이나 현감의 살림채였던 내아로 추측한다. 건축 양식은 합각지붕을 한 정면 6칸, 측면 2칸의 굴도리집으로, 포작(包作)은 없다. 이 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세벌대의 장대석과 고막이, 네모꼴 초석, 그리고 긴장대석을 이용하여 쌓은 욕은지(浴恩池)라 부르는 네모꼴 연못이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생부인 장헌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1년에 한 차례씩 전배하였다. 1789에는 먼저 김포 장릉을 전배하고 현륭원(사도세자의 원)을 참배하였다. 이때 정조는 부평에 들러 부사를 인견하며 활을 쏘고 이 곳 욕은지에서 손을 씻었다 한다. 긴 장대석을 이용하여 단을 쌓거나 연못을 네모꼴로 만드는 것 등은 조선 시대의 전형적 구조 기법이다. 남아 있는 석축의 흔적과 초석, 둥근 기둥과 함께 이 건물이 17세기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1m 이상의 높이로 석축의 대를 구축하는 기법이나 ㄱ자형 의장설계도 조선 중기 건축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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